크세노폰 - 아나바시스. 책.

아나바시스 - 8점
크세노폰 지음, 천병희 옮김/단국대학교출판부

1. 책 읽기 전에

헤로도토스(BC 484~425)와 투키디데스(BC 465~400)까지만 읽고 로마사로 넘어가려는데 크세노폰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소크라테스 제자라는데 스승의 포스가 그에게 어떻게 전달되었을지 궁금하다.

2. 크세노폰(BC 430/25~355/50)은 누구?

소크라테스(BC 470~399) 제자요, 플라톤(BC 427~347) 동창 되시겠다.
소크라테스의 모습은 플라톤의 저작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크세노폰의 작품인 '소크라테스 회상'에서는 다른 모습으로 그려진다고 한다.

BC 424년 델리움 전투에서 소크라테스가 크세노폰을 구해줬다는 얘기도 있다.

이 책에서는 소크라테스와 크세노폰이 꽤 친한 관계로 나온다.

크세노폰은 편지를 읽고 나서 아테나이 출신의 소크라테스와 이번 여행에 관하여 의논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퀴로스가 아테나이 인들과의 전쟁에서 라케다이몬 인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었던 것으로 생각되고 있는 만큼 그의 친구가 되는 것은 아테나이 시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을까 염려하여 크세노폰에게 델포이에 가서 이번 여행에 관하여 신과 의논하도록 충고했다. 그래서 크세노폰은 그리로 가서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여행을 성공적으로 잘 마치고 목적을 달성한 뒤 무사히 돌아오기 위해서는 어떤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기도드려야 하는지 아폴론 신에게 물었다. 그러자 아폴론 신은 그가 어떤 신들에게 제물을 바쳐야 하는지 알려 주었다. 크세노폰은 돌아와서 소크라테스에게 예언을 말해 주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가 그것을 듣고, 그가 여행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머무는 것이 좋은지 먼저 묻지 않고 여행하기로 혼자서 결정하고는 어떻게 여행하는 것이 가장 좋겠는지 물었다고 그를 나무랐다. "하지만 자네가 그렇게 물었으니"하고 그는 덧붙였다, "신이 시키신 대로 해야 할 것이네."

- 크세노폰, 아나바시스, 3.1:5~6

책의 배경인 퀴로스 2세의 반란에 참가해서 실패한 후 아테나로 귀환하지만 정확하지 않은 이유로 아테네에서 추방되었다고 한다. 그의 또다른 저작인 '헬라스의 역사(Hellenica)'에 BC 350년대 중후반까지 언급되고 있어 70세 후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추정된다.

3. ‘아나바시스’의 시대적 배경

책에서 다루고 있는 쿠낙사 전투(BC 401)에서 헬라스 귀환(BC 399)까지다.

이 시기는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404)이 막 끝난 가운데 지중해 전역에 전쟁의 후유증이 남아있던 시대였다.
그리스 전역이 황폐화 되다보니 저마다 먹을 거리를 찾아서 타지역으로 떠나는데, 헬라스 용병은 그리스의 인기있는 수출품이었다.

페르시아 제국은 페르시아 전쟁(BC 490~479)에서 자존심에 약간의 생채기가 나기는 했지만, 여전히 만만치 않은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때는 아테네, 스파르타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실리를 추구했다.

4. 책의 서술 방법

이 책은 용병으로 참가한 한 군인의 생환기로 회고록이자 자서전이요, 여행기이자 역사서라 할 수 있다.
지휘관의 미덕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으며, 은연 중에 비치는 자기 자랑도 빼놓을 수 없다.
자신을 3인칭으로 기술해 주관성을 배제하고 객관성을 높히는 서술 방법은
후대에 카이사르의 전쟁기에서도 사용되고 있어 인기가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5. 책의 내용

헬라스 인들이 퀴로스와 함께 내륙으로 행군하는 동안 전투가 있기 전까지 겪었던 일들과, 퀴로스가 죽은 뒤 흑해로 행군하는 동안 겪었던 일들과, 그들이 아시아에 있는 크뤼소폴리스에 도착하여 흑해의 입구에서 벗어날 때까지 육로와 해로로 흑해로부터 밖으로 행군하는 동안 행하였던 일들, [트라케에서 세스토스와 있었던 일들, 티브론에게 군대를 인계할 때까지의 일들을 기술하였다.]


- 크세노폰, 아나바시스, 7.1:1

다리우스 2세(재위 BC 422~404)가 죽자 장남인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재위 BC 404~359)가 즉위했으나 모후의 지원을 등에 업은 동생 퀴로스 2세가 반란을 일으키고 쿠낙사 전투(BC 401)가 일어난다. 크세노폰을 포함한 1만 명 이상의 헬라스 용병이 참전했지만, 퀴로스 2세가 전사해 반란은 실패한다.
남은 페르시아군이 전부 대왕의 군대로 넘어간 가운데 남아있는 헬라스 용병들은 지휘관들까지 팃사페르네스의 배신으로 잃고 만다. 망연자실한 헬라스 1만 용병들, 각성한 크세노폰의 제안 아래 새로운 장군들을 임명하고 활로를 찾아나선다. 헬라스 용병들은 페르시아군에게 쫓기는 가운데, 도망간 지역에서도 이민족들의 저항에 부닥친다. 하지만 그들에겐 크세노폰이 있지 않던가. 크세노폰의 천재적인 전략과 부하들의 충성으로 우여곡절 끝에 흑해에 도착하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환영단이 아니었다.
같은 헬라스인에게 배신당해 모두 노예로 팔려갈 위기에 처한 순간, 고향으로 돌아가던 크세노폰이 되돌아와 그들에게 새로운 일거리를 제안한다. 트라케 지역의 왕족인 세우테스를 지원하여 왕권을 다시 되찾는 일이다. 병사들은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한다. 하지만 세우테스는 급료를 체불하고, 병사들은 그 탓을 크세노폰에게 돌린다. 크세노폰이 중간에서 급료를 가로챘다는 것이다. 마지막 자기의 입장을 변론하는 크세노폰. 사형 선고를 받기 전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차이가 있다면 크세노폰은 살아남는다는 것. 소크라테스 제자로서의 포스가 폭발한다. 이런, 은혜로 원수로 갚는 배은망덕한 놈들!!. 병사들은 반성하고 크세노폰은 위기를 넘긴다. 세우테스는 급료를 지불하고, 크세노폰은 티브론에게 병력을 인계한다. 티브론은 페르시아 제국의 팃사페르네스와 파르나바조스와의 한판을 앞두고 있다. 전체 행군의 길이는 1,150파라상게스(6,325km), 왕복 행군의 날 수는 1년 하고도 3개월이었다.

6. 기억에 남는 부분

1.8:8 쿠낙사 전투를 앞두고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의 병력이 다가오는 모습

오후가 되자 먼지가 이는 것이 보였는데, 처음에는 흰 구름 같더니 시간이 조금 지나자 들판 위에 멀리 뻗어 있는 암흑 같았다. 적군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자 여기저기서 청동이 번쩍이더니 창들과 적군의 대열들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1.9:16 쿠낙사 전투에서 전사한 퀴로스 2세에 대한 평가

누가 정의에서 탁월하기를 바라는 것이 명백하면, 그는 이런 사람들을 불의한 이익을 탐하는 자들보다 더 풍요하게 살 수있게 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2.6:1~6 팃사페르네스에게 배신당해 참수된 클레아르코스에 대한 평가

클레아르코스는 남달리 전쟁에 능하고 전쟁을 좋아했던 것 같다.... 불명예나 피해를 당하지 않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데도 전쟁을 택하는 것, 편안히 살 수 있는데도 단지 전쟁을 하기 위하여 노고를 원하는 것, 위험 없이 재산을 지킬 수 있는데도 전쟁을 함으로써 그것을 축내는 쪽을 택하는 것, 이런 것들이야말로, 생각건대, 전쟁을 좋아하는 사람의 행동인 것 같다.

2.6:21~25 헬라스 군을 배신한 것으로 의심되는 메논에 대한 평가

텟살리아 출신의 메논은 엄청난 부를 공공연히 열망했다.... 그는 자신이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거짓 맹세와 거짓말과 기만이 지름길이라고 생각했고, 솔직과 진실은 어리석음과 같은 것으로 여겼다.... 그는 또 거짓 맹세를 일삼는 불의한 자들로 알려진 자들은 모두 잘 무장한 자들로 여기고 두려워했으나, 경건하고 진실한 자들은 유약한 자들로 여기고 이용하려 했다.

4.7:21~25 기나긴 행군 끝에 흑해에 도착하는 장면 (ㅠ,.ㅠ)

선두가 산에 올라 바다를 보는 순간 큰 함성이 일었다. 그러자 크세노폰과 후위는 그 소리를 듣고 앞에서도 다른 적군이 공격해 오는줄 알았다.... 그러나 고함 소리가 더 커지고 더 가까워지며 뒤따라가던 대열들이 잇달아 고함을 질러대는 앞 대열들을 향하여 달려가면서 사람의 수가 많아지는 만큼 고함 소리도 점점 더 커지자 크세노폰은 큰일이 난 줄 알았다.... 그들은 곧 군사들이 "바다다," "바다다," 하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고, 그들이 외치는 소리는 대열들을 따라 전달되었다. 그러나 후위의 모든 부대들도 뛰기 시작했고 짐 나르는 짐승들과 말들도 앞으로 내달았다. 그리고 그들은 산정에 올랐을 때 모두들 눈물을 흘리며 서로 얼싸안았고, 장군들과 대장들도 마찬가지였다.

7. 책을 읽고 난 후

소크라테스의 제자 크세노폰, 2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1만 헬라스군을 이끌고 늠름하게 귀환하다.
소크라테스에게서 배운 모든 기술을 그는 전쟁터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그를 통해 살아난다.

설득력과 변론술은 천재적이다.
실의에 빠진 병사들의 기운을 북돋아 활로를 찾아나가기 위해 상대방을 설득하는 장면과 마지막 급료를 떼먹었다는 누명을 쓰고 돌에 맞아 죽을 위기에 처하자 자기의 입장을 변호하여 오히려 고발한 병사들을 미안하게 만드는 변론술은 정말 통쾌할 정도다.

지휘관으로도 천재적이다.
지휘관으로 필요한 자질을 모두 파악해 적은 나이에도 지휘관에 등극하고 그것을 실전에 그대로 적용한다.
패전 후 곧바로 패인을 분석해 역공을 가하는가 하면, 전략상 가장 유리한 장소와 시간, 진형 등을 파악하고 신속하게 결정하는 능력 등은 그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시기를 받고 모함을 받았을 것이다.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껴진다.
허가 없는 완벽함, 그의 인생이 순탄치 않았으리라는 것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연대표> (p.247)

BC 401년 3월 사르데이스를 출발하다.
              7월 타프사코스에서 에우프라테스 강을 건너다.
              9월 쿠낙사 전투
            10월 자파타스 강변에서 팃사페르네스가 배신하다.
    10~11월~
BC 400년 2월 카르두코이족의 나라와 아르메니아를 통과하다.
              2월 흑해 남동해안의 트라페주스에 도착하다.
              3월 트라페주스를 출발하다.
            10월 뷔잔티온으로 건너가다.
BC 399년 1월 세우테스와 함께 하다.
              2월 트로아스 지방으로 건너가다.
              3월 군대가 페르가모스에서 티브론에게 넘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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