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 니코마코스 윤리학. 책.

니코마코스 윤리학 - 10점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강상진.김재홍.이창우 옮김/이제이북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한 삶이 인생의 목적이며, 성격적 탁월성을 따라 좋은 습관을 만들면 지속적으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아리스토텔레스도 동물과는 다른, 인간의 기능이 이성에 따르는 삶에 있다고 생각한다. 플라톤은 영혼이 지혜를 맡고 있는 이성적 부분, 용기를 맡고 있는 기개적 부분, 절제를 맡고 있는 욕구적 부분으로 이루어지며, 이성적 부분이 나머지를 조화롭게 지배하면 행복한 사람이 된다고 말한다. 즉 참다운 지혜를 제대로 알게 되면 곧바로 행동할 수 밖에 없고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철학자만이 가능한 일이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참다운 지혜를 알 수 없다는 한계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철학자가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이 지혜를 맡고 있는 이성적 부분과 용기, 절제, '자유인다움' 등 품성상태를 맡고 있는 욕구적 부분으로 이루어지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욕구적 부분에 많이 지배되므로 이 부분을 탁월하게 조절할 수 있는 습관을 획득하면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도 가능한 일이다.

욕구를 따르는 삶에 있어서 각각의 상황에 가장 좋은 행위가 있다.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은 중용의 상태다. 무모함과 비겁함 사이에서 용감함을 취하고, 무절제와 목석 사이에서 절제를 추구하고, 낭비와 인색함 사이에서 '자유인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중용이다. 이런 중용적인 행위를 반복하면 우리는 좋은 습관을 획득해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정의로운 일들을 행함으로써 우리는 정의로운 사람이 되며,
절제있는 일들을 행함으로써 절제있는 사람이 되고,
용감한 일들을 행함으로써 용감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2권 1장 1130b1

이런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실천적 지혜, 즉 인간에게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무엇이며, 각 상황에 어떻게 행동해야 적절한 것인가에 대한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좋은 습관을 가진 사람만이 실천적 지혜를 가진 사람이 될 수 있다.

행복하다는 것은 좋은 행위를 통해서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하지만 중용적인 행위들이 즐거운 일들일까? 우리가 선택해야 할 즐거움은 최고로 즐거운 것이며, 훌륭한 사람들이 선택하는 즐거움이다. 훌륭한 사람들은 즐거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즐거운 것을 택한다. 부끄러운 즐거움은 실제로 즐거운 것들이 아니며, 단지 즐거운 것처럼 보일 뿐이다. 훌륭한 사람들은 탁월한 행위들을 통해서 즐거움을 얻으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즐거움이다.

행복한 삶이 일시적이지 않고 지속되게 하려면 좋은 행위를 습관으로 만들어야 한다. 각각의 상황에 맞는 중용적인 행위를 반복하면 훌륭한 사람들이 맛보는 고귀한 즐거움과 실천적 지혜를 얻을 수 있다. 고귀한 즐거움은 좋은 습관을 만들도록 도와주며, 실천적 지혜는 또 다른 좋은 행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드디어 철학자가 아닌 대다수의 사람들도 행복한 삶을 지속적으로 누릴 수 있는 선순환 구조로 들어서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남는다. 개인은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좋은 정치체제가 뒷받침하지 않는다면 행복한 삶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문제를 후속편인 '정치학'에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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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CA 2010/11/25 11:59 # 삭제 답글

    읽고 싶던 적은 없었지만 추천해주시니 언제 봐야죠. 고마워요. ^^;
    사족이지만 유럽에서 사먹던 배는 같은 배더만 한국배랑 참 많이 다르더군요. 그래도 배는 배죠. 행복 얘기가 나오니까 갑자기 생각이 나네요. 예전 수용소 얘기 때 달았던 덧글 기억도 나고. 이전 질문은 그리스 신들에 대한 거였어요. 그래서 말인데 전지전능과는 좀 거리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
  • 키튼 2010/11/25 16:24 #

    유럽 배 저도 생각나네요. 모양도 다르고 맛도 시큼하니 독특했던 것이 떠오르네요.

    빅터 프랭클은 사람이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동일하게 반응한다는 프로이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죠.
    어떤 사람은 환경에 굴복하여 인간이기를 포기한 채 짐승이 되었지만, 어떤 사람은 환경에 저항하며 더욱 숭고한 인간이 되는 것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죠.
    후자는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며 오래 살기보다는 명예를 지키기 위해 의연하게 최후를 맞이하는 것에서 행복을 느꼈을 겁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용감한 사람이란 마땅히 두려워할 것은 두려워하되 두려워해서는 안되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런 상황들에서 적들의 위협은 두렵게 '보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두려워해서는 안되는 것이죠. 그래서 보통사람들은 부끄럽게 생존하죠.
    하지만 숭고한 사람들은 이것을 알고 있었고 명예를 지키면서 죽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평소에 하는 말보다는 저런 어려운 상황이 닥쳤을 때의 행동으로 우리는 사람들을 판단해야 한다고 말이죠.
    저는 저런 상황이 닥치지 않기를 바라지만, 저런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 두렵기도 합니다. (예전의 제 행동에 대한 후회와 미래의 제 행동에 대한 불확신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간극을 조금이라도 줄여가는 것, 그것이 제 공부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또 하나 '그리스 신들은 정말 절대로 죽지 않는가, 절대 사라지지도 않는가'라는 질문이 나온 배경이 궁금하네요.
    왜 이런 의문을 갖게 되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래야 저도 제 생각을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CA 2010/11/26 09:50 # 삭제 답글

    유치하다는 전제 그대로 책에 '불사'라고 하니까 정말 그런가 싶어서 그게 궁금했던 거죠. 간단하죠? ^^
    신화에 대한 얘기는 잘 모르지만 아는 한도 내에서 제일 재미있었던 건 '수메르 신화'와 관련한 그리고
    '프로이트의 견해'와 관련한 해석들이었어요. 아리스토틀이나 플라톤이나 정작 그리스 사람들이 신을
    어떻게 생각한 건지 좀 혼동이와요. 그냥 이야기로만 생각한 걸까 궁금해져서요. 그런 정도 입니다. ^^
  • 키튼 2010/11/26 20:56 #

    저도 수메르 신화 재밌게 읽었습니다. 길가메시와 엔키두의 운명이 바로 우리 자신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죠.

    그리스 사람들과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사이에는 신에 대해 비슷하게 생각한 부분도 있고, 다르게 생각한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그리스 비극에서 인간들은 신의 법을 지키지 않거나-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신의 뜻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의 오만한 행동-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 때문에 벌을 받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마땅히 두려워해야 하는 것도 바로 '신'과 '운명'을 말하는 것이죠. 신은 '인간의 오만(hubris)'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그리스 사람들도 이런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반면에 대부분의 그리스인들은 모든 것이 신때문에 생겨난 일이며, 따라서 신이 해결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 전쟁에서 그리스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신의 도움에 있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 플라톤은 사람들이 신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에 덧붙여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의 일이라면 마땅히 두려워하며 받아들여야 하지만 인간의 일은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때문에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에 대한 불경죄'로 재판에 회부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기꺼이 죽었지만 한 사람은 "아테네 시민들이 철학에 두 번 죄를 짓지 않게 하기 위해" 기꺼이 도망쳤죠. 이런 정도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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