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 - 유럽 왕실의 탄생. 책.

유럽왕실의 탄생 - 8점
김현수 지음/살림

저자는 유럽 왕실의 탄생 과정을 세 나라의 경우를 통해 보여준다. 유럽왕실 성립의 전제조건으로 '봉건제'와 '로마가톨릭'을 들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은 프랑크 왕국을 통해, 잉글랜드는 헤이스팅스 전투 후 노르망디 대공 윌리엄을 통해 이들 제도를 받아들였다고 주장한다. 전자는 간략하게 다루어지고 후자에 많은 부분을 할당하여 잉글랜드 왕실의 뿌리찾기에 중점을 두고 있다.

843년 베르됭 조약으로 삼분되었던 프랑크 왕국은 870년 메르센 조약으로 서프랑크(프랑스), 동프랑크(독일)로 양분된다. 프랑스는 권력 투쟁 끝에 루이 5세(재위986~987)로 카롤링거 왕조가 막을 내리고 갈리아계 귀족인 위그 르 그랑의 아들 위그 카페(재위987~996)가 즉위하면서 카페 왕조(987~1328)가 시작된다. 독일은 카롤링거 왕조의 루트비히(재위899~911)가 후사를 남기지 못한 채 죽자 게르만 부족들이 회의를 통해 왕을 선출한다. 프랑켄 부족 대공인 콘라트 1세(재위911~919)를 거쳐 작센 부족 대공인 하인리히 1세(재위919~936)가 즉위함으로써 작센 왕조가 성립한다. 뒤를 이은 오토 1세(재위936~962, 962~973)는 교황 요한 12세(재임955~963)를 도와 서로마 황제가 되면서 동프랑크 시대가 막을 내리고 신성로마제국 시대가 시작된다.

영국 왕실의 탄생은 843년 켈트족의 후손인 케니스 1세의 스코틀랜드 왕국 성립 시기와 1066년 노르망디 윌리엄 대공의 잉글랜드 정복 시기 사이에 논란이 있지만, 저자는 봉건제와 로마가톨릭이 공고해진 후자를 영국 왕실 성립 시기로 전제한다. 1066년 잉글랜드 웨섹스 왕실의 에드워드 2세(참회왕, 재위1042~1066)가 후사가 없는 상태로 죽으면서 웨섹스의 실권자인 고드윈의 아들 해럴드 2세를 왕위에 지명한다. 하지만 에드워드 2세가 생전에 외사촌인 노르망디 대공 윌리엄에게 왕위를 약속한적이 있었기 때문에 윌리엄은 잉글랜드를 정복해 손수 왕위에 오르기로 결심한다.

윌리엄(1027~1087, 당시 39세)은 신중하고 치밀한 성격의 소유자로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장애물들을 모두 정리한다. 먼저 교황 알렉산더 2세(재임 1061~1073)에게 전투의 정당성을 설명하고 교황의 깃발과 베드로의 머리카락이 담긴 반지를 획득한다. 프랑스 왕 필리프 1세(재위1060~1108)는 윌리엄의 외조카로 지원받는데 문제가 없었다. 그 후 멘, 브르타뉴 지방은 정복하고, 볼로뉴, 신성로마제국, 스칸디나비아 제국과는 동맹관계를 맺어 후방의 위협을 제거했다. 반면에 해럴드(1021~1066, 당시 45세)는 저돌적이며 예민한 기질의 소유자로 섣부른 공격보다는 적과의 접경지역을 탄탄하게 방어하여 적들을 고사시키는 방법으로 승리를 거두는 방식을 선호했다.

양국의 군사력은 윌리엄의 노르만군은 총 7,500명 정도로 기병 2,000명, 중장보병 4,000명, 궁병, 석궁병 1,500명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해럴드의 잉글랜드군은 총 8,000명 정도로 평민계층인 퓌르드 6,500명, 왕의 직업군이자 용병인 하우스칼, 왕의 직속군인 테인 1,500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잉글랜드군은 궁병이 거의 없었는데 화살도 품질이 떨어져 노르만군이 쏜 화살을 주워쓰기도 하였다. 하우스칼과 테인은 기병이었는데 이동중에만 말을 탔고 공격할 때는 말에서 내려 싸웠다.

1066년 해럴드가 대우에 불만을 품고 북쪽으로 칩입한 동생 토스티그와 노르웨이 왕 호르로데 연합군을 막고 있을 때, 남쪽으로 윌리엄이 쳐들어왔다는 소식을 듣는다. 윌리엄은 바다를 건너 런던으로 가는 요충지인 헤이스팅스에 진영을 구축하고 북쪽의 침입을 힘겹게 격퇴한 해럴드와 대치하게 된다. 전투 초기 해럴드는 방패-벽 전술(보병의 방패를 겹칩으로써 탄탄한 인간방벽을 만드는 전술)로 윌리엄의 선공을 성공적으로 막아낸다. 윌리엄이 말에서 떨어지기도 하는 등 노르만군이 밀리는 모습을 보이자 해럴드의 기병들은 방패-벽을 풀고 나가 그들을 공격하지만 오히려 역공을 당한다. 이 때 윌리엄은 방패-벽을 무너뜨릴 힌트를 얻는다. 거짓으로 공격과 도주를 반복하면서 잉글랜드군을 유인해 섬멸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전투가 계속되어 많은 수의 잉글랜드군이 죽자 방패-벽이 헐거워진다. 헐거워진 방어벽 사이로 궁수들의 공격이 가해지고 마침내 방패-벽이 무너진다. 전투 중에 해럴드는 눈에 화살을 맞고 허벅지에 칼을 맞아 사망한다.

윌리엄은 헤이스팅스의 승리를 발판으로 런던까지 진입해 윌리엄 1세(정복왕, 재위1066~1087)로 즉위한다. 그 후 계속되는 반란을 성공적으로 진압하고 노르만 왕조의 잉글랜드 왕국은 안정기에 들어선다. 하지만 잉글랜드 왕실의 탄생과 관련된 의문점은 남아있다. 노르만 왕조가 잉글랜드 왕실의 기틀을 마련했다면 기존의 앵글로-색슨 웨섹스 왕조는 무엇이냐는 것이다. 따라서 두 왕가가 결합한 플랜태저넷 왕조의 등장을 거쳐 왕실 내에서 프랑스어가 아닌 영어를 주된 언어로 사용하게 된 에드워드 1세(재위1272~1307) 때야말로 명실공히 잉글랜드 왕실의 정통성이 확립된 시기로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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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항상 깨어있어라. : 1066년 헤이스팅스 전투에 앞선 또 하나의 전투. 2011-01-08 17:47:41 #

    ... 란드 역사가인 스노리 스툴루손의 <헤임스크링글라>에 기록된 부분을 보르헤스가 인용한 부분이다. 1066년 노르망디 윌리엄 대공이 잉글랜드 남쪽을 침략한 헤이스팅스 전투에 앞서, 북쪽으로는 해럴드의 동생 토스티그 백작과 노르웨이 왕 해럴드 시구르다르손(호르로데)의 연합군이 침략했다. 위 얘기는 후자와 관련된 이야기로, 전투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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