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케로 - 우정에 관하여. 책.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 - 8점
M.T. 키케로 지음, 천병희 옮김/도서출판 숲

"인생에서 우정을 앗아가는 자들은 말하자면 세상에서 태양을 앗아가는 것이나 다름없네." (46절)

아내와 이혼하고 딸까지 잃은 만년의 키케로(106~43, 63세)는 카이사르의 집권 후 공화국 회복에 대한 희망마저 버린다. 그의 곁에 남은 건 평생지기 앗티쿠스(110~32, 78세) 뿐이다. B.C.44년(당시 키케로 62세, 앗티쿠스 66세) 노인이 된 친구의 우정에 고마움을 표하고자 책을 헌정한다.

원제는 '우정의 라일리우스(Laelius de amicitia)'다. 키케로가 라일리우스의 입을 빌어 얘기하기 때문이다. 키케로의 스승이었던 복점관 스카이볼라는 우정에 대해 장인 라일리우스에게 들었던 말들을 키케로에게 전한다. B.C.129년 사랑하는 친구 소 스키피오(185~129, 56세)가 죽은 직후 라일리우스의 두 사위 복점관 스카이볼라와 판니우스가 찾아와 친구를 잃은 슬픔을 위로하고 참된 우정의 의미와 본질, 그 처방에 대해 묻는다.

라일리우스는 스키피오의 육체는 죽었지만 영혼이 불멸하고 생전에 좋은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분명히 좋은 곳으로 갔을 것이라 믿는다. 만에 하나 영혼과 육신이 동시에 죽는다 하더라도 죽음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듯이 어떠한 나쁜 것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또한 그와의 좋았던 기억은 영원하고, 그의 명예는 로마가 존속하는 한 영원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슬프기 보다는 행복하다고 말한다.

라일리우스는 우정은 지혜로운 사람들 사이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하며 우정의 이점을 말한다. 부는 소비하는 데, 권세는 존경 받는 데, 관직은 명망을 얻는 데, 쾌락을 즐기는데, 건강은 고통에서 벗어나 신체적 기능을 수행하는 데만 이바지하지만, 우정은 모든 곳에 이바지하며 그 중 가장 큰 이점은 미래를 향하여 밝은 빛을 투사하여 영혼이 불구가 되거나 넘어지지 않게 해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익 때문에 우정이 필요하다기보다는 우정의 본질이 인간의 본성에서 유래했다고 말한다. 우정(amicitia)이란 말이 사랑(amor)에서 파생되었듯이, 필요와 계산보다는 사랑의 감정과 결합된 호의에 의해 맺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부자나 권력자보다 정직, 명예 등 미덕을 갖춘 사람에게 더 호감을 느끼는데, 이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듯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가 친구에게서 가장 즐기는 것은 그에게서 얻는 이익이 아니라 친구의 사랑 그 자체이다.

우정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우정을 위협하는 상이한 이해관계, 상반된 정치적 견해, 점점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성격적 결함, 여자나 관직 등을 두고 벌이는 경쟁 등을 피해야 한다. 우정 대신 부와 명예를 택하는 친구보다 신뢰가 있고, 견실하며, 의연한 사람을 만나야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현인들의 우정이 아니라 평범한 우정의 경우 절교해야 할 상황이 있다. 이 때는 천천히 상대방이 모욕을 느끼지 않도록 헤어져야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오래도록 헤어지지 않도록 제대로 평가하고 나서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실하지 못하고 이익을 목적으로 아첨이나 맞장구를 치는 사람을 피하고, 진실되고 선의를 목적으로 충고를 아끼지 않는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 충고를 할 때는 거리낌은 있되 거칠지 말아야 하며, 충고를 받을 때는 참을성은 있되 대들지 말아야 한다.

라일리우스는 스키피오와의 우정이 역사에 남을 것이라 믿는다. 그와는 취향과 목표와 의견이 완전 일치했다고 한다. 스키피오는 제2의 라일리우스였다. 그가 생각하기에 그들과 비견될 수 있는 우정은 서너쌍 뿐이다. 테세우스와 페이리토오스,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라스, 오레스테스와 퓔라데스, 다몬과 핀티아스가 그들이다.

이 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나오는 우정에 관한 논의(제8권)의 연장선 상에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혜로운 사람들 사이에서만 완전한 우정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선한 본성을 가지고 서로에게 해를 끼치는 대신 행복하게 할 것이며, 그 때문에 우정이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유익을 기반으로 한 우정은 유익한 것이 없어지는 순간 깨어질 수 밖에 없으며, 선한 본성을 기반으로 한 우정만이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단테는 베아트리체가 죽은 뒤 키케로의 이 작품을 읽으며 위안을 얻었다고 한다. 아마도 단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몰랐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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