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세노폰 - 소크라테스 회상. 책.

소크라테스 회상 - 8점
크세노폰 지음, 최혁순 옮김/범우사

크세노폰(B.C.430~355)은 책에서 스승 소크라테스를 변호했다. 스승이 고발되어 처형당했을 때, 그는 아나바시스 후 이오니아 지방에 머물고 있었다. 스승의 최후를 지키지 못한 안타까움이 컸었고, 스승의 사후에야 빚을 갚을 수 있었다.

B.C.399년(소크라테스 70세, 크세노폰 31세) 시인 멜레토스, 인민당 영수 아뉘토스, 정치 연설가 뤼콘은 국가가 인정하는 신을 신봉하지 않고 새로운 신격(다이모니온(Daimonion), 데몬을 연상시키는 이 신은 소크라테스에게 지혜를 속삭였다고 한다.)을 수입한 죄와 청년들을 부패시킨 죄로 소크라테스를 고발하고 처형했다.

크세노폰은 소크라테스가 누구보다도 신을 경외했으며, 청년들을 미덕으로 인도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소크라테스는 신을 믿지 않는 불경한 난장이 아리스토데모스에게 신이 우리에게 직립, 손, 언어, 이성의 선물을 주었으니 신을 경외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크라테스는 청년들을 부패가 아니라 미덕으로 인도했다. 식욕, 물욕, 육욕을 절제하고, 기만행위를 금지하며, 체력단련을 권했다. 또한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를 가지며, 친구를 소중히 여기라고 말했다.

소크라테스는 모든 일에 대하여 모든 형태로 도움이 되는 사람이었다. 20세도 안되어 정치에 입문한 자신만만한 글라우콘(플라톤의 형)은 한 가정을 도울 능력조차 없다는 것을 지적받자 한 국가를 다스리려는 그의 꿈이 얼마나 공허한지 깨달았다. 대중 앞에서의 연설을 두려워하는 카르미데스는 위대한 사람들에게 조언하는 그의 능력을 깨닫고 대중 앞에서도 펼 것을 다짐했다. 화가와 조각가는 작품에 영혼을 담기 위해서는 눈과 얼굴 표정을 모방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크라테스는 용기, 지, 광기, 질투, 여가, 치자, 자신을 아는 것, 사려, 정의, 자유, 토론법 등 다양한 질문에 명쾌하게 대답했다. 답을 찾아내는 소크라테스의 출발점은 목적론적 사고였다. 모든 것은 쓸모가 있고, 그 쓸모에 합당하면 아름답고, 옳고, 선하고, 정의롭다는 것이다.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것은 추하고, 틀리고, 악하고, 불의하다는 것이다. 망치가 못박을 때 아름답듯이 인간은 이성을 통해 미덕을 추구할 때 아름답다.

버트란드 러셀은 “현명한 사람이 한 말에 대한 어리석은 사람의 기록”이라며 크세노폰을 무시했다. 물론 플라톤과 크세노폰의 기록을 비교할 때 크세노폰이 미진한 면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 때문에 소크라테스의 반짝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헤르모게네스가 전하는 소크라테스 최후의 모습이다.

“변명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신령이 이것에 반대했네. 나는 평생동안 누구보다 선한 삶을 살아왔고, 즐거운 생애를 보냈네. 삶의 쇠퇴기와 죽음의 하중을 맞기 전에 죽는 것도 나쁘지 않네. 무엇보다 정의로운 죽음이 수치스런 삶보다 나을 것이네. 나를 죽인 자들에겐 불의의 수치가 씌워질 것이고, 죽은 나에겐 정의의 명예가 씌워질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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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항상 깨어있어라. : 크세노폰 - 아나바시스. 2011-02-09 14:25:31 #

    ... )은 누구? 소크라테스(BC 470~399) 제자요, 플라톤(BC 427~347) 동창 되시겠다. 소크라테스의 모습은 플라톤의 저작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크세노폰의 작품인 '소크라테스 회상'에서는 다른 모습으로 그려진다고 한다. (이 작품은 아직 안읽어서 평가 불가) BC 424년 델리움 전투에서 소크라테스가 크세노폰을 구해줬다는 얘기도 있다. 이 책에서는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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