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 크리톤. 책.

에우티프론,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파이돈 - 10점
플라톤 지음, 박종현 엮어 옮김/서광사


새벽녘 죽마고우 크리톤이 탈옥을 권유하기 위해 감옥에 갇힌 소크라테스를 방문한다. 크리톤은 부자임에도 친구 하나 구하지 못했다는 세간의 평판을 두려워한다. 소크라테스가 죽은 후 소크라테스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닥치게 될 힘든 미래도 걱정스럽다. 소크라테스는 그 모든 일들이 '올바른 것(to dikaion)'을 하는 것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며 담담하게 거절한다. 짧지만 "어느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은" 소크라테스를 만날 수 있는 대화편이다.

소크라테스 크리톤, 나는 원칙 이외에는, 내게 속하는 그 어떤 것에도 따르지 않는 사람이네. 자네의 말이 옳다면 따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따르지 않겠네.

크리톤 알겠네.

소크라테스 자네는 건강이 좋지 않을 때 대중의 말을 듣나, 의사의 말을 듣나?

크리톤 물론 의사의 말을 듣지.

소크라테스 삶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는 대중들의 평판이 중요한가, 제대로 알고 있는 전문가의 조언이 중요한가?

크리톤 물론 전문가의 조언이 중요하지.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삶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평판이 두렵다는 자네의 걱정은 할 필요가 없는 걱정이군.

소크라테스 자네는 내가 여기서 탈옥해 다른 나라로 도망가기를 권하지만 과연 그것이 올바른 일일까? 나는 아테네에서 태어나 평생동안 거의 떠난 적이 없네. 아테네에서 배우고,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고, 양육까지 하며, 칠십 평생을 살아왔네. 이 때까지 아테네가 주는 모든 것을 누리면서 살았던 내가, 사형 판결을 받았다고 해서 탈옥한다면 이것보다 불의한 일이 또 있겠는가? 다른 나라로 망명하고 싶었다면 여기에서 탈옥하는 것 말고도 얼마든지 기회가 있었다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네. 이것은 내가 아테네의 법률을 옳은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뜻한다네. 합의한 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내가 아테네를 설득하든지, 아니면 아테네의 명령을 이행하는 것 뿐이라네. 그 외의 방법은 옳지 않은 일일세. 만약 내가 아테네에서 도망쳐 다른 나라로 갔을 때 그곳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가? 그동안 내가 옳다고 말하던 법률을 어긴 사람의 이야기를 누가 들어주겠는가? 그 때가 되면 나는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말 밖에는 할 수 없을걸세. 하지만 그런 굴욕적이고 구차한 삶은 살 가치가 없네. 내 가족과 친구들도, 나와 함께지만 다른 나라에서 구차한 삶을 살기보다는, 내가 없더라도 아테네에서 당당한 삶을 사는 것이 나을 것이네. 이것이 올바른 것일세. 크리톤! 자식들도, 사는 것도, 또는 그 밖의 어떤 것도 올바른 것(to dikaion)보다 더 귀히 여기지 말게나. 자네 더 할 말이 있는가?

크리톤 하지만, 소크라테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군.

소크라테스 그럼 그만두게. 크리톤! 신이 이렇게 인도하니, 이렇게 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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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1/02/24 02:0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키튼 2011/02/24 22:51 #

    외롭더라도 원칙을 지키는 것이 더 든든하지 않을까요.
    언급해주신 덕분에 자유론 펴고 앉았습니다.
    '손해볼 것을 선택할 자유'가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키튼 2011/02/25 21:30 #

    밀이 "자유라고 불릴 수 있는 유일한 자유는, 우리가 타인에게 행복을 뺏으려 하지 않는 한, 또는 타인이 행복을 얻고자 노력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 한, 우리 자신의 방법으로 우리의 행복을 추구하는 자유다."라고 말했군요. 그렇다면 자유라는 개념에는 타인이 아니라 자신과 관계된 모든 것, 극단적으로 자신이 '손해볼 것을 선택할 자유'도 포함된다는 말이군요. 소크라테스의 경우에는 자신이 '손해본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가 '손해본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겠군요. 기준이 자기자신에게 있는 사람만이 타인의 기준이 변함에 따라 흔들리지 않겠지요. 자율적인 사람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고 말한 칸트와도 일맥상통합니다.
  • 2011/03/02 04:0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키튼 2011/03/03 13:14 #

    왜 우리나라 사람들이 서구에 비해 사람들의 시선에 민감할까? 두 가지가 떠오르네요. 하나는 사람들이 아직 근대의 자아라는 개념에 익숙하지 못하다는 것이고, 하나는 자신에 대해 잘모르는 사람들은 타인의 행동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왕조시대에서 식민시대, 독재를 거쳐 민주주의로 이행하기는 했지만, 그 속에서 개인보다 국가를 우선시하는 경험이 개인을 중시하는 경험을 압도했죠.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던지면 제대로 대답할 사람들이 많지 않죠. 자기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다보니 타인을 관찰하는데 집중할 수 밖에 없습니다. 타인이 하는대로 따라가면, 즉 대세를 따라가면 혼자 죽지는 않을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자기자신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타인을 제대로 파악한다는 것은 더욱 불가능하죠. 애당초 따라간다는 것도 착각인 것입니다.

    더욱 불행한 사건은, 어떤 삶이 옳은 것인지, 행복한 것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남의 인생에 함부로 간섭하는 것입니다. 무려 '관심'이라는 허울좋은 탈을 쓰고 말이죠. 소크라테스 같은 현인이 하는 말이 아니면 '관심'이 아니라 '오지랖'이죠. 우리는 전문가들의 충고만 가려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나'를 위한 충고를 구별할 수 있으려면 나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어야 하겠죠. 이건 누가 가르쳐줄 수 없이 계속해서 자신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비전문가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상황에 처하는 것을 피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은 불리한 조건입니다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것에 그나마 희망을 가집니다. ㅠㅠ

    저도 그 강의 듣고 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한 생각에 저도 100% 동의합니다. 그가 성장한 시대의 잔영이 아닐까 이해해봅니다.

    마지막으로 타인이 피해를 입는 상황에 대한 민감한 조언보다, 자신이 피해를 입는 상황에 대한 당당한 대응이 우선되어야할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홍세화씨의 '할아버지의 개똥 세 개'(http://www.hongsehwa.pe.kr/test1) 일화가 항상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생각할 거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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