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헤스 - 칠일 밤/실명. 책.

칠일 밤 - 10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현대문학

"장님들, 특히 여기서 여러분에게 말하고 있는 이 장님이 볼 수 없는 색이 바로 검은색입니다. 그리고 볼 수 없는 또 다른 색이 빨간색입니다. '적과 흑', 이것들이야말로 우리들이 볼 수 없는 색입니다. 나는 아주 깜깜해야만 잠을 자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이 안개와 같은 세상, 그러니까 초록색이나 파란색의 안개가 끼여 있는 세상에서 잠을 자기가 몹시 힘들었습니다. 장님들의 세계는 바로 희미한 빛이 비추는 세계입니다. 나는 어둠 속에서 잠을 자고 싶었습니다. 빨간색은 희미한 밤색으로 보입니다. 실명의 세계는 사람들이 상상하듯이 밤의 세계가 아닙니다.... 나는 아직도 노란색과 파란색, 그리고 초록색을 볼 수 있습니다. 흰색은 사라졌거나, 아니면 회색과 혼동되기 일쑤입니다. 빨간색은 나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 보르헤스, 칠일 밤, 송병선역, 칠일 밤/실명, p.228-229

1955년 아르헨티나에서는 페론 정부가 물러난 후 아람부루 정부가 들어섰다. 보르헤스는 어릴 때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자주 찾았던 국립도서관의 관장으로 임명되었다. 꿈을 이룬 그 때 그는 눈이 멀었다. 그런 후, "책과 밤을 동시에 주신 신의 경이로운 아이러니"를 '축복의 시'에 담았다.

전설상의 삼손, 오이디푸스, 테이레시아스, 역사상의 호메로스, 타미리스, 밀턴, 그루삭, 호세 마르몰 등 실명에 대한 이야기는 그것의 상징성만큼이나 매력적이다.

밀턴은 세상에 남길 작품을 구상하면서 여러가지 주제를 적어놓았는데, 그 중 하나가 '삼손'이었다. 그는 후에 눈이 멀었고 그가 적었던 주제는 예언이 되었다. 눈이 먼 밀턴은 서사시 '투사 삼손(Samson Agonistes)'을 썼다.

실명에 대한 가장 강력한 이야기는 성경에 있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예수는 그를 의심하는 바리새인들을 꾸짖으며 말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 요한복음, 9:39-41

눈이 있어도 마음이 없으면 제대로 볼 수 없다. 눈은 내가 보고자 하는 것을 볼 뿐이다. 눈을 뜬 나는, 눈을 감은 보르헤스보다 어둡다. 최인훈은 '광장'에서 말했다.

"눈을 감는 버릇을 가지라, 신에 가까워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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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1/04/08 01:1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키튼 2011/04/10 13:51 #

    오랜만에 뵙네요. ^^
    두가지를 다 가질 수 없는 것이 인생의 비밀인 것 같아요.
    가난해야 정신적 호사를 느낄 수 있으니 아이러니하죠.
    벚꽃, 수선화, 타르트, 홍차. 이 모든걸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상태가 행복이죠.
    잠시동안만이라도 마음껏 누릴시길 바랍니다.
    지금 마음을 보르헤스처럼 시로 남기는 것도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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