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 - 책과 세계. 책.

책과 세계 - 10점
강유원 지음/살림

지금 행복한 사람은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들에게 대한민국은 로마만큼 완벽한 국가다. 그들이 키케로처럼 고답적인 취향을 만족시키고 싶다면, 가끔 ‘CEO를 위한 인문학 강좌’나 ‘와인과 골프와 함께하는 인문학 강좌’ 등을 들으면 될 일이다.

지금 불행한 사람은 이미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대한민국은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지옥일 뿐이다. 그들은 대부분 마키아벨리처럼 도덕적이어서는 승리할 수 없다고 믿고 있다. 아담 스미스처럼 이기심을 위해 일하는 것에 더이상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믿고 있다. 다윈처럼 진화라는 승부에서 승리하는 것만이 나의 DNA를 후세에 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고 있다. 그들이 지금 불행한 이유가 남보다 도덕적이고, 덜 이기적이며, 승리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힘들지만 비도덕적이고, 이기적이며, 승리에 익숙해지도록 저마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불행한 삶을 타개하기 위해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도 있었다. “감당할 수 없이 많은 양의 비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온 땅을 거대한 깊은 흙탕 늪으로 만들었”던 1315년의 폭우와 죽음이 만연했던 1348년의 흑사병을 겪은 중세 유럽. 니콜라우스 쿠자누스는 학문을 통해서 신의 뜻을 알 수 있다던 토마스 아퀴나스와는 다르게 학문은 오히려 신의 뜻을 아는 데 방해가 될 뿐이라는 신비주의를 제창했다. 중세인들은  “분노한 신의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 쿠자누스의 뜻을 따라 더욱 신에게 매달렸다. 쿠자누스의 말은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에게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열심히 공부하는 대신 열심히 교회, 성당, 절에 다니고 있다.

펠레폰네소스 전쟁의 패배로 처참했던 그리스 아테네. 플라톤은 어떤 것도 믿을 수 없을 만큼 혼란스러운 시절에 변하지 않는 순수한 것을 찾으려 애썼다. 그는 현실과는 다른 순수한 세계 즉, 이데아가 존재하며, 육체와 달리 혼은 불멸한다고 생각했다. "혼이 저승으로 가면서 지니고 가는 것으로는 교육(교양: paideia)과 생활방식(trophe)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인데,...이것들이야말로 망자를 가장 크게 이롭도록 해주거나 해롭게 하는 것들이라도 하네." 플라톤의 말에 솔깃한 사람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생활습관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면 될 것이다.

강유원은 어떤 길이 옳다고 말하지 않는다. <파우스트>의 한 구절처럼 '모든 이론은 잿빛'이어서 이론은 현실에 맞닿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러 고전이 보여주는 자아에 몸을 담궜다 빼기를 반복하다보면 자신에게 어울리는 자아를 찾게 될 것이다. 어떤 길이 옳은지 확인할 길이 없어 무의미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방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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