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죄부의 가장 오래된 근거. 메모.

"그 뒤에 유다는 군대를 모아 아둘람 성으로 갔다. 일곱째 날이 다가오자 그들은 관습대로 몸을 정결하게 하고 그곳에서 안식일을 지냈다. 다음 날, 장사 지내는 일이 시급해졌으므로, 유다와 그의 군사들은 전사자들의 주검을 거두어 조상들의 무덤에 친족들과 나란히 묻어 주려고 갔다. 그런데 죽은 자들마다 그 옷 속에서 율법으로 유다인들에게 금지된 얌니아 우상들의 패가 발견되었다. 그래서 그들이 전사한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라는 사실이 모든 이에게 분명히 드러났다. 그들은 모두 숨겨진 일들을 드러내시는 의로운 심판관이신 주님의 방식을 찬양하였다. 또 그렇게 저질러진 죄를 완전히 용서해 달라고 탄원하며 간청하였다. 고결한 유다는 백성에게, 전사자들의 죄 때문에 그러한 일이 일어난 것을 눈으로 보았으니 죄를 멀리하라고 권고하였다. 그런 다음 각 사람에게서 모금을 하여 속죄의 제물을 바쳐 달라고 은 이천 드라크마를 예루살렘으로 보냈다. 그는 부활을 생각하며 그토록 훌륭하고 숭고한 일을 하였다. 그가 전사자들이 부활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면, 죽은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쓸모없고 어리석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경건하게 잠든 이들에게는 훌륭한 상이 마련되어 있다고 내다보았으니, 참으로 거룩하고 경건한 생각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죽은 이들을 위하여 속죄를 한 것은 그들이 죄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었다."


"사실 성스러운 교회에서 쫓겨난 채
죽은 자는 막바지에 뉘우치더라도,
오만하게 보낸 시간의 30배 기간
동안 이 절벽의 밖에서 기다려야
하는데, 만약 훌륭한 기도로써 그런
법령이 줄어들지 않는다면 말이오."

- 단테, 신곡, 김운찬 역, 연옥, 3:136-141

* <마카베오기>는 구약에서 유일하게 죽은자의 부활과 속죄를 기록하고 있다. 이 부분을 하나의 근거로 하여 연옥이라는 개념이 생겨났으며 면죄부가 성행할 수 있었다. 단테는 <신곡> 연옥 편에 가족이나 친지들의 기도를 바라는 많은 영혼들을 등장시켰다. 중세의 가톨릭 신자들은 산 자들이 죽은 자들을 위해 기도하면 할수록, 재물을 바치면 바칠수록 연옥에서 벌받는 기간이 줄어든다고 믿었다. 기원전 3세기-1세기 알렉산드리아에서 히브리어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70인역이 성립했다. 이 때 히브리어 원본이 없는 외경 15권이 포함되었다. <마카베오기>도 그 중 하나였다. 종교개혁 시기 루터는 '오직 성경'이란 기치를 내세웠다. 이 때 '성경'은 히브리어로 된 원본 성경만을 말했다. 외경은 '성경'이라는 지위를 잃어버렸다. 연옥과 면죄부의 중요한 근거였던 <마카베오기> 역시 힘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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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항상 깨어있어라. : 성경 - 마카베오(Maccabees). 2011-10-14 18:52:21 #

    ... 십자가에 못박혔다. 하지만 마카베오와는 다르게 그는 부활했다. 율법보다 인간이 더 중요해질 때까지 아직 100여년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lt;마카베오하&gt;는 면죄부의 근거를 제공했다. 마카베오는 이방인들과의 전투에서 사망한 유다인들의 시신을 수습해 매장하다가 그들의 품에서 “얌니야 우상들의 패”를 발견했다. 우상을 숭배했기 ... more

덧글

  • shaind 2011/08/24 23:56 # 답글

    그런데 정작 쿰란에서 발견된 기원전의 히브리어 구약성경 사본들을 보면 히브리어 자칭 "원본"인 마소라 사본보다는 70인역 성경에 더 가까웠죠...
  • 키튼 2011/08/25 00:46 #

    그렇군요. 70인역의 신뢰도가 한층 높아진 놀라운 발굴이었군요. 사해문서에 히브리어로 기록된 몇몇 외경(에녹서, 토빗서 등)들도 포함되어 있네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히브리어 원본이 더 있을 수도 있겠군요. 외경도 신경써서 살펴봐야겠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shaind 2011/08/27 08:21 #

    어찌보면 당연하달 수도 있는 건데, 마소라 사본 가운데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사본이 서기 900년대의 것입니다. 마소라 텍스트가 "일점일획"을 완전히 보존한다는 개념하에 이어져오긴 했지만, 그나마 그런 개념이 정착된 것도 아무리 해봤자 로마에 의한 예루살렘 파괴 이전으로 거슬러올라가지 않습니다.

    그러니 기원전에 그리스어로 번역된 70인역이 사해사본과 더 비슷한 건 거의 필연적이죠.
  • shaind 2011/08/27 08:23 #

    사실 복음서나 서간들을 보면 당시 기독교인들의 대다수(그러니까 그리스어의 문해가 가능하던 사람들)에게 있어서 성경이란 거의 70인역을 의미하는 거나 마찬가지였고, 성경구절의 인용도 70인역을 따랐는데, 루터가 "오직 성경"을 말하면서 마소라 사본에 의거해 구약 외경을 정리한 건 좀 웃긴 일일 수도 있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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