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마카베오(Maccabees). 책.

<마카베오>는 그리스 제국 통치 시기 유다인들의 투쟁과 여호와의 구원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마카베오기상>은 B.C.170년-136년 마카베오 가문의 저항을 중심으로, <마카베오>는 B.C.175년-162년 사제들의 권력 투쟁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로마, 스파르타, 이방민족들이 얽혀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356-323)이 죽자 그리스 제국은 이스라엘를 포함한 시리아 지역의 셀레우코스 왕조, 이집트 지역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그리스를 포함한 마케도니아 지역의 마케도니아 왕국, 트라키아 지역의 리시마코스 왕조로 분열되었다. 셀레오코스 왕조는 유다 지역을 확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지만 유다의 저항과 여호와의 구원 때문에 결국 정복하지 못했다. <마카베오>는 셀레우코스 4세(재위187-175)부터 안티오코스 7세(재위138-129)까지를 다루고 있다.

셀레우코스 4세는 헬리오도로스를 유다로 보내 성전 기금을 탈취하려고 했다. 헬리오도로스가 성전의 금고를 만지려고 할 때 천사들이 말을 타고 나타나 그를 채찍으로 때려 죽이려 했다. 대사제 오니아스의 기도 덕분에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 시기 유다는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안티오코스 4세(재위175-164)가 왕위에 오르면서 평화가 깨졌다. 야손은 유다의 대사제직을 유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그리스 문화를 도입했다. 예루살렘 성전을 제우스 신전이라고 부르고, 곳곳에 체육관을 지어 유다 백성들이 예배보다는 레슬링에 열중하도록 만들었다. 왕은 예루살렘의 예배와 율법을 지키는 것과 할례를 금지했다. 이를 어긴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율법학자 엘아자르는 율법에서 금지한 부정한 돼지고기를 먹기보다 죽음을 택했다. 한 어머니와 그의 일곱 아들도 돼지고기를 먹기보다 혀가 잘리고 머리가죽이 벗겨지고 사지가 잘리는 처절한 고문 속에서 죽기를 택했다. 안티오코스 4세는 유다의 불만이 높아지자 장군 니카노르, 고르기아스, 티모테오스에게 그들을 말살하라고 명령했다. 공격은 안식일에 이루어졌다. 수천 명의 유다 백성들이 저항 없이 죽었다.

마타티아스는 안식일이라고 가만히 죽음을 맞기보다 안식일일지라도 저항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의 다섯 아들 요한, 시몬, 유다(마카베오), 엘아자르, 요나탄이 함께 싸웠다. 곳곳에서 승전보가 울리는 가운데 마타티아스가 죽자 셋째 아들 마카베오가 뒤를 이었다. 마카베오가 이끄는 유다군은 열세였지만 여호와가 함께 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승리했다. 잇따른 패전 소식에 오만했던 왕은 분노했다. 페르시아 원정에서 돌아오던 길에 수레에서 떨어진 그는 병석에 누웠다. 온몸이 썩어가고 구더기들이 눈에서 기어나왔다. 그는 뒤늦게 죄를 회개했지만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안티오코스 4세의 아들 안티오코스 5세(173-162, 재위164-162)가 왕위를 이었다. 아홉 살의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장군 리시아스가 실제 권력자였다. 리시아스는 눈에 가시같던 유다를 전력으로 치기 위해 보병 10만 명, 기병 2만 명, 코끼리 32마리를 동원했다. 대군이 유다를 포위했다. 마카베오의 동생 엘아자르는 전투 중에 코끼리에 깔려 죽었다. 전력상으로 열세였다. 마카베오는 열심히 기도했다. 그 때 필리포스 장군이 반역을 일으켜 안티오키아를 점령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리시아스는 급히 돌아갈 생각에 유다군과 협상에 임했다. 유다 백성들은 전처럼 자기들의 관습대로 살아가는 것을 보장받았다.

셀레우코스 4세의 아들 데메트리오스 1세(재위162-150)가 로마에서 돌아왔다. 안티오코스 5세와 리시아스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왕은 바키데스를 유다 총독으로 세우고 알키모스를 대사제로 임명했다. 그들은 유다 백성들에게 전에 협정했던 것처럼 평화를 보장하는 척 했다. 하지만 그들을 믿고 넘어온 모든 이를 죽였다. 다시 전투가 시작되었다. 유다인들은 서로 죽였다.

데메트리오스 1세는 반란을 진정시키기 니카노르를 파견했다. 처음에 니카노르와 마카베오는 잘 지냈다. 알키모스가 니카노르의 행동을 왕에게 고발하자 그는 진압에 나섰다. 니카노르는 성전을 파괴할 것이라 협박하며 마카베오군과 일전을 벌였다. 마카베오는 대사제 오니아스와 선지자 예레미야가 금 칼을 건네주는 꿈을 꾸고 전투에서 승리했다. 니카노르가 적들 중에서 가장 먼저 죽었다. 마카베오는 그의 목과 손을 잘라 성밖에 내다 걸었다. 유다는 원군의 필요성을 느끼고 로마와 동맹을 맺었다.

왕은 이 소식을 듣고 바키데스와 알키모스를 보냈다. 전투 중에 마카베오가 쓰러졌다. 동생 요나탄이 뒤를 이었다. 요한은 요나탄의 요청에 따라 짐을 전달하러 가다 살해당했다. 마카베오의 5형제 중에 둘째 시몬과 막내 요나탄만 남았다. 바키데스는 유다를 세차게 몰아붙였다. 요나탄은 요르단 강 건너편으로 도망갔다. 대사제 알키모스는 성소 안뜰 벽을 헐려고 하다가 갑자기 쓰러져 죽었다. 바키데스는 안티오키아로 되돌아 갔다 유다 내 배신자들의 요구로 다시 출병했다. 요나탄과 맞붙었으나 이번에는 요나탄의 승리였다. 바키데스는 그를 부른 자들을 모조리 죽이고 요나탄과 평화협상을 했다.

안티오코스 4세의 또다른 아들 알렉산드로스 발라스(재위150-146)가 돌아왔다. 데메트리오스 1세는 위협을 느껴 요나탄에게 협조를 요청했다. 알렉산드로스 발라스는 동맹을 요청할 뿐만 아니라 요나탄을 대사제로 임명했다. 데메트리오스가 다시 유다의 세금 면제를 보장할 것을 약속했다. 유다 백성들은 데메트리오스를 믿지 않아 알렉산드로스 발라스를 지원했다. 알렉산드로스 발라스가 데메트리오스 1세를 몰아내고 새로운 왕이 되었다.

알렉산드로스 발라스는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6세(재위186-145)의 딸 클레오파트라 테아와 결혼했다. 장인은 사위가 다스리는 지역을 차지하고 싶었다. 그는 데메트리오스 1세의 아들 데메트리오스 2세를 지원했다. 프톨레마이오스 6세와 데메트리오스 2세는 알렉산드로스를 함께 몰아냈다. 알렉산드로스가 죽고 사흘 뒤 프톨레마이오스 6세도 죽었다. 데메트리오스 2세(재위146-139)가 왕위에 올랐다.

데메트리오스 2세는 요나탄을 여전히 대사제로 인정했다. 요나탄도 데메트리오스 2세를 도와주었다. 안티오키아 주민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왕은 요나탄에게 원군을 요청했다. 유다군은 10만 명의 주민들을 죽였다. 사태는 진정되었으나 불만은 커져갔다. 트리폰 장군은 알렉산드로스 발라스의 아들 안티오코스 6세와 함께 데메트리오스 2세를 축출했다. 안티오코스 6세는 여전히 요나탄을 대사제로, 요나탄의 형 시몬은 티로에서 이집트에 이르는 지역의 총독으로 임명했다. 요나탄은 로마, 스파르타와 동맹을 다시 한번 확고히 했다.

요나탄은 데메트리오스 2세의 잔군들의 공격을 막아냈다. 트리폰 장군은 요나탄에게 선물을 주겠다고 꾀어 그를 사로잡았다. 요나탄이 죽은 줄 알았던 유다 백성들은 유일하게 남은 시몬을 후계자로 선출했다. 트리폰 장군은 요나탄을 풀어주는 대신 그의 아들들과 돈을 요구했다. 형 시몬은 거부할 수 없었다. 트리폰은 요나탄과 그의 아들들을 죽였다. 트리폰(재위142-138)은 안티오코스 6세도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시몬은 도주해 있던 데메트리오스 2세에게서 유다의 완전한 자치를 인정받았다. 예루살렘 성채에 거주하던 많은 대적자들이 굶어죽었다. 남은 사람들은 성채를 열고 화해했다. 시몬은 성채를 정화하고 여호와께 기도했다. 데메트리오스 2세는 메디아에 원군을 요청하러 갔다 아르사케스(미트리다테스1세, 재위171-138)에게 사로잡혔다.

데메트리오스 2세의 동생 안티오코스 7세(재위138-129)가 트리폰을 쫓아내고 왕위에 올랐다. 안티오코스 7세는 다시 유다의 영토와 세금을 요구했다. 왕의 장군 켄데배오스와 시몬이 맞붙었다. 시몬의 아들 유다와 요한이 켄데배오스에게 승리했다.

시몬의 사위 프톨레마이오스는 예리코 평야의 장수였다. 그는 시몬과 두 아들 마타티아스, 유다를 연회에 초대해 살해했다. 가자라에 있던 요한은 이 사실을 미리 알아채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다니엘>은 마카베오와 같은 지혜로운 인간의 저항이 조금은 도움이 되지만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모든 것은 여호와의 뜻이기 때문에, 인간의 죄에 대해 여호와께서 안기는 시련과 처벌은 온전히 겪는 것이 맞다고 여겼던 것이다. <마카베오상>에서 마타티아스는  안식일에 저항 없이 죽어간 사람들과 달리 안식일지라도 저항하겠다고 결심했다. 그와 그의 다섯 아들은 끝까지 저항하다 죽어갔다. <마카베오하>에서 율법학자 엘아자르, 한 어머니와 일곱 아들은 돼지고기를 먹기보다 죽음을 택했다. 마카베오는 적과 싸우기 전에 여호와를 진심으로 믿고 그에게 기도하자 천사들이 나타나 그를 도왔다. 적군들이 성전을 파괴하려고 위협할 때는 천사들이 나타나 심판했다.

<마카베오하>는 <마카베오상>과는 다르게 마카베오 가문의 죽음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 반면에 율법을 지키다 죽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많다. 이것은 어떠한 인간의 저항이라도 율법에 맞도록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마카베오상>에서 마카베오 가문의 불행한 결말은 이를 뒷받침한다. 불의에 대한 저항보다 안식일을 지키는 율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마카베오 가문의 저항은 심판을 늦추긴 했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예수도 안식일에 병자를 치료하고 십자가에 못박혔다. 하지만 마카베오와는 다르게 그는 부활했다. 율법보다 인간이 더 중요해질 때까지 아직 100여년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마카베오하>는 면죄부의 근거를 제공했다. 마카베오는 이방인들과의 전투에서 사망한 유다인들의 시신을 수습해 매장하다가 그들의 품에서 “얌니야 우상들의 패”를 발견했다.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에 죽었던 것이다. 마카베오는 그들을 위해 속죄의 제물을 바쳤다. 죽은 자들을 위해 제물을 바치면 죄를 용서받고 부활할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루터는 히브리 성서(895년 마소라 사본)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마카베오>를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정경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근거로 한 면죄부도 허용할 수 없었다. 최근에 발굴된 사해문서에 히브리어로 작성된 대부분의 외경들이 포함되어 있었으나 <마카베오>는 발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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