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 메넥세노스. 책.

메넥세노스 - 10점
플라톤 지음, 이정호 옮김/이제이북스

펠로폰네소스 전쟁(431-404)이 스파르타의 승리로 끝났다. 스파르타는 여세를 몰아 소아시아 지역을 두고 페르시아와 대치했다. 페르시아는 테베를 지원했다. 아테네와 코린토스 등 다른 나라들도 테베 편에 섰다. B.C.386년 스파르타는 위협을 느껴 페르시아와 조약을 맺었다. 스파르타 쪽 조약 체결자인 안탈키다스의 이름을 따 '안탈키다스 화약'이라고 한다. 소아시아의 그리스 도시와 키프로스는 페르시아 소유로 하되 그리스 본토 도시들은 독립시킨다는 내용이었다. 조약이 발효되자 아테네는 전몰자들의 장례를 치렀다. 그즈음 플라톤은 시칠리아의 군주 디오니시우스 1세를 통해 철인정치의 꿈을 실현하려다 실패하고 아테네로 돌아왔다. 그 때 마침 전몰자들의 장례식 때 추도 연설가를 선발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는 작품을 구상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미 죽었지만, 플라톤은 그를 다시 불러냈다.

작품은 소크라테스가 평의회에 참석하고 돌아오던 메넥세노스를 만나는 데서 시작한다. 소크라테스는 젊은 메넥세노스가 정치를 한답시고 돌아다니는 것이 영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추도 연설할 사람을 선발할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는 기존의 연설자들을 조롱했다. 아테네인 앞에서 아테네인을 찬양하는 연설이야 어렵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어차피 형식은 정해져 있는 것이니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메넥세노스는 그의 비아냥이 마땅치 않았지만 그가 추도 연설을 한다면 어떨지 궁금했다. 소크라테스는 그가 연설을 배운 스승 아스파시아가 말해주었던 연설을 전했다. 아스파시아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추도 연설로 유명한 페리클레스에게 연설을 가르친 사람이며, 그의 정부였다고도 한다.

연설은 페리클레스와 마찬가지로 조국과 선조의 업적을 찬양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페리클레스는 아테네 제국을 최우선으로 두고 조국을 위해 죽는 것이 최고의 선이라고 강조했지만, 아스파시아는 조국을 위해 죽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위해 죽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리의 국가가 중요한 것은 힘이 센 제국이라서가 아니라 정의를 위해서만 전쟁을 치렀다는 자부심 때문이라는 것이다. 페리클레스는 아테네가 승리한 모든 전쟁을 자랑스러워했지만, 아스파시아는 외부의 침략에 맞선 방어 전쟁-예를 들어 마라톤 전쟁-만을 자랑스러워 했다.

유가족들에 대한 당부도 달랐다. 페리클레스는 국가가 전몰자들의 영예를 영원히 기억해주고 유가족들에 대한 양육도 책임질테니 이런 국가를 위해 초개처럼 목숨을 던지라고 당부했다. 국가가 있어야 시민도 있다는 입장이었다. 아스파시아는 전몰자들이 정의를 위해 싸우다 명예롭게 죽었으니 유가족들은 그들을 자랑스러워 해야 하며,  남은 인생을 그들의 탁월함을 능가할 수 있도록 인간의 탁월함(arete)을 위해서 살거나 죽어야 한다고 말했다. 탁월한 시민이 있어야 탁월한 국가가 있다는 입장이었다. 연설이 끝나자 메넥세노스는 그것이 아스파시아의 연설이 아니라 소크라테스의 연설이라는 것을 알아채고는 소크라테스를 비꼬았다. 소크라테스는 그에게 입단속을 시키고 다음 만남을 약속했다.

이 작품은 소크라테스가 아니라 플라톤 자신의 의견을 전하고 있다. 플라톤은 몰락하는 아테네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그것은 여전히 남아있는 페리클레스의 망령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페리클레스가 말한 것처럼 아테네인들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던졌지만, 그것은 정의로운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부 정치인들의 이익을 위해서 악용되었다. 아테네는 민주정체를 표방하고 있었지만 시민들이 탁월해지지 않는 이상 언제든지 사악한 지도자가 들어설 위험을 안고 있었다. 페리클레스는 탁월한 지도자였지만 그것은 아테네 제국만을 위한 탁월함이었다. 정의롭지 않은 전쟁에서 탁월하게 승리할 수는 있었지만, 전쟁에 참가했던 시민들을 정의롭지 않게 만들었던 것이다. 시민을 정의롭지 않게 만드는 어떤 지도자도 사악하다.

이것은 현실 정치가 가질 수 밖에 없는 죄수의 딜레마다. 모든 국가가 사악할 때, 혼자만 정의롭다면 어떻게 될까? 모든 국가를 감당할만한 힘이 있다면 정의로울 수 있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라면 무자비하게 약탈당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현실 정치는 도덕이 아니라 이익을 다룬다. 페리클레스는 현실을 직시한 현실 정치가였다. 플라톤은 현실의 모습을 바꾸기를 원했다. 시민들이 탁월해지면 탁월한 지도자를 선출할 것이고 그는 정의로운 국가를 만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아테네는 모든 국가를 감당할만한 힘을 가질 수 없었고 플라톤의 꿈도 이루어질 수 없었다.

현재 미국은 모든 국가를 감당할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 플라톤의 희망대로 미국 국민들이 탁월해지면 탁월한 지도자를 선출할 것이고 그는 정의로운 국가를 만들어갈 수 있다. 미국 국민은 우연히, 일시적으로 탁월한 지도자인 오바마를 선출했다. 그가 정의롭지 않은 세력들과 싸우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그에게 지속적으로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탁월해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오바마도 한미FTA나 금융위기를 도덕이 아니라 여전히 이익의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 이것은 패러다임의 문제다. 미국 국민들이 어떻게 마키아벨리가 말한 우민을 벗어나 플라톤이 말한 탁월한 국민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미국 대통령이 어떻게 마키아벨리를 버리고 플라톤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인가?

미국이 이익의 정치를 버리지 않는 한 한국은 미국의 입김을 벗어날 수 없다. 모든 국가를 감당할만한 힘이 없는 한국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다. 우리 국민이 아무리 탁월해지고 탁월한 지도자를 뽑을지라도 그가 정의로운 국가만을 추구한다면 열강들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도덕적으로 무결하지만 현실 정치에 무능한 지도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물론 도덕적으로도 무결하고 현실 정치에도 유능한 지도자가 있다면 가장 좋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있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면, 도덕적으로 흠결이 있을지라도 현실 정치에 유능한, 다시 말해서 자국의 이익 추구에 능한 지도자를 선택해야 한다. 눈물나도록 안타깝지만 그게 약소국이 처한 현실이다. 최악의 경우 도덕적으로도 흠결이 넘쳐나고 현실 정치에도 무능한 지도자를 다시 선택한다면 우리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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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ㅎㅎ 2012/08/03 20:53 # 삭제 답글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사람은 정치도 못합니다. 부정부패로 빠지게 됩니다.
    수신이 되어야 치국이 됩니다. '나부터' 올바라야 남도 올바를 수 있는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지만 현실 정치를 잘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아마 박정희 대통령을 두고 한 말인듯 한데
    박정희 대통령이 물론 인권탄압을 해서 도덕적으로 옳다고 볼 수 없지만
    그래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지만 아는' '부정부패로 지 배만 채우려는' 사람은 아니었죠.
    실제로 부정부패 없었구요..
    그는 항상 나라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다만 자기가 생각한 '나라를 위하는 길'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이죠.
    인문고전을 읽고 열심히 '수신'하셨지만
    '치국'의 과정에서 당태종이 그랬듯 '덕치'를 통해 발전했더라면
    경제뿐 아니라 의식도 발전하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그런 박정희도 '수신'을 철저하게 했기에 경제발전이 가능했다는 것.
  • ㅎㅎ 2012/08/03 20:56 # 삭제 답글

    그리고 '수신'의 가르침을 비현실적이라고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치국'에 적용하여 당태종같은 덕치를 했다면 의식 발전까지 가능했을 것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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