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나이 제국의 마지막 밤. 메모.

"파랄로스 호가 아테나이에 닿자 패전 소식이 페이라이에우스에서 입에서 입을 통해 장벽을 지나 아테나이 시내로 전해졌다. 비통한 소식을 접한 그날 밤 아무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희생당한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보다는 앞으로 닥칠 자신들에 대한 걱정이 더 컸기 때문이다. 멜로스 섬을 포위하여 승리를 거두고 그곳 라케다이몬 이주민들을 모조리 죽이고 노예로 팔아버린 일이나, 히스티아이아, 스키오네, 토로네, 아이기나의 주민들이나, 그 밖의 많은 헬라스 인들에게 저지른 만행이 그대로 자신들에게 되돌아올 일을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크세노폰, 헬레니카, 2.2.3)

"이 무렵 멜로스인들은 아테나이인들의 방벽 중 지키는 보초병이 많지 않은 쪽을 또다시 함락했다. 그 결과 나중에 데메아스의 아들 필로크라테스 휘하의 증원부대가 아테나이에서 파견되었다. 아테나이인들이 포위 공격을 강화한 데다 멜로스 내부에 배신자가 생겨 멜로스인들은 아테나이인들에게 무조건 항복했다. 아테나이인들은 멜로스 주민 가운데 성인 남자를 잡히는 족족 다 죽이고, 여자들과 아이들은 노예로 팔았다. 아테나이인들은 훗날 5백 명의 이주민을 보내 그곳을 자신들의 식민지로 만들었다."(투퀴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5.116)

"그러자 아테나이인들이 페리클레스 지휘 아래 다시 에우보이아로 건너가 섬 전체를 복속시키고 모든 도시와 협정을 맺었다. 그러나 헤스티아이아는 예외였으니, 아테나이인들은 그곳 주민을 내쫓고 자신들이 그곳을 차지했다."(투퀴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1.114)

"아무튼 이제 그(페리클레스)는 다시 반란군에게 신경을 쓰기 시작했으니, 전함 50척과 중무장 보병 5천 명을 거느리고 에우보이아로 건너가 그곳의 도시들을 제압했다. 칼키스에서는 '기사 계급'이라고 불리는 부유하고 명망 있는 자들을 추방하는 것으로 만족하더니, 헤스티아이아의 주민들은 모조리 추방하고 그들 대신 아테나이인들을 정착시켰다. 그가 헤스티아이아의 주민들에게만 이런 가혹한 벌을 내린 것은 그들이 앗티케의 배를 나포하여 승무원들을 죽였기 때문이다."(플루타르코스, 페리클레스 전, 23)

"그해 여름 같은 시기에 아테나이인들은 스키오네를 함락한 다음 어른 남자들은 죽이고 아이들과 여자들은 노예로 삼았으며, 영토는 플라타이아이인들에게 거주하라고 내주었다."(투퀴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5.32)

"배에서 내린 아테나이인들이 어느새 토르네를 함락하자, 보병 부대가 아무 저항도 받지 않고 곧장 뒤따라와서는 옛 성벽의 일부를 허문 자리를 지나 시내로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이다. 일부 펠로폰네소스인들과 토로네인들은 백병전을 벌이다 그 자리에서 전사하고, 통치자 파시텔리다스를 포함하여 일부는 생포당했다. 브리시다스는 토로네를 구원하러 출발했지만, 목적지까지 약 40스타디온을 남겨두고 그곳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도중에 돌아갔다. 클레온과 아테나이인들은 두 개의 승전비를 세웠는데, 하나는 항구에 하나는 성벽 옆에 세웠다. 그들은 토로네의 여자들과 아이들은 노예로 삼고, 토로네의 남자들과 펠로폰네소스인들과 그곳에 와 있던 다른 칼키디케인들은 아테나이로 보냈다."(투퀴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5.3)

"그 사이에 상륙한 아테나이인들은 즉시 전군을 동원하여 튀레아를 함락했다. 도시에 불을 지르고 그 안에 있는 재물을 약탈한 다음 전사하지 않은 아이기나인들을 모두 아테나이로 데려갔다. 거기에는 부상을 당하고 포로가 된 라케다이몬인 총독 파트로클레스의 아들 탄탈로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또 퀴테라에서도 안전상의 이유로 옮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는 몇 사람을 데려가 이들을 여러 섬에 분산 안치했다. 아테나이인들은 나머지 퀴테라인들은 4백 탈란톤의 공물을 바치고 자신들의 영토를 소유하게 하되, 포로로 잡은 아이기나인들은 양국 간의 해묵은 원한 때문에 모두 죽이고, 탄탈로스는 스팍테리아 섬에서 잡아온 다른 라케다이몬인들과 함께 구금하기로 결정했다."(투퀴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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