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데이빗 소로 - 월든(Walden). 책.

월든 - 10점
헨리 데이빗 소로 지음, 한기찬 옮김/소담출판사

1845년 7월 4일.
내가 숲속에 들어간 이유는 신중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하기 위해서,
인생에서 꼭 알아야 할 일을 과연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 이르렀을 때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기 위해서였다.
삶이란 그처럼 소중한 것이기에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고 싶지 않았고,
도저히 불가피하기 전에는 체념을 익힐 생각도 없었다.
나는 깊이 있게 살면서 인생의 모든 정수를 뽑아내고 싶었고,
강인하고 엄격하게 삶으로써 삶이 아닌 것은 모조리 없애버리고 싶었다.

1847년 9월 6일.
나는 숲에 처음 들어갈 때만큼 확실한 이유가 있어서 숲을 떠났다.
나는 경험에 의해 적어도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배웠다.
즉, 사람이 자신이 꿈꾸는 방향으로 자신 있게 나아가면서
자신이 꿈꾸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면 보통때는
생각지도 못한 성공을 거두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어떤 일은 받아들이고, 어떤 일은 내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를 넘게 된다.
요컨대 새롭고 보편적이며 보다 자유로운 법칙이 그의 주위와
그의 내부에 확립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예전의 법칙이 확대되면서
보다 자유로운 의미에서 그에게 유리하게 해석됨으로써
보다 높은 존재의 질서에 대한 허락을 받고 삶을 영위하게 될 것이다.
삶을 단순화하는 데 비례하여 삼라만상의 법칙은 덜 복잡해질 것이며,
고독도 고독이 아니고 가난도 가난이 아니며 약점도 약점이 아니게 된다.

2년 2개월동안의 숲생활.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느낀
숲속 생활, 인간의 고귀한 삶, 자연의 아름다움이
160 년의 시간을 넘어 내 가슴에 고스란히 안착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구석에 쌓인 입지 않는 옷들을 수거함에 넣었으며,
한구석에 쌓인 읽지 않는, 읽은 책들을 중고샵에 팔았으며,
보일러를 끄고 몸의 온기로써 난방을 해결했다.

인간은 미천하여
조금이라도 한눈을 팔면
내 몸 속의 짐승에게 잡아먹힌다.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 한다.
너무나 주옥같은 명문들이 많아 잊기 전에 옮겨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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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찌꺼기만 잔뜩 쌓아놓고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할지
어떻게 없애야 할지 몰라 결국 스스로 금은으로 된 족쇄를
채우고 있는 이들에게도 이야기를 하려 한다.

나는 기운 옷을 입었다고 해서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낮춰본 적이 없다.
그러나 사람들 대부분은 건전한 양심을 갖는 일보다는
유행에 맞는 옷을 입거나 적어도 깨끗하고 깁지 않은 옷을 입는 데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 사람에게서 옷을 벗길 경우 그들 각자가
얼마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흥미로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 사람이 새롭지 않은데 어떻게 새옷이 잘 맞을 수 있겠는가?
..... 옷을 보아도 우습지 않게 하고 그것을 입는 사람을 성스럽게
만들어 주는 것은 입는 사람의 진지한 눈빛과 그 사람의 성실한 삶뿐이다.

문명이 인간 조건의 진보라고 주장한다면 문명 속에서 더 큰 희생을 치르지 않고
보다 나은 집을 구할 수 있다는 점이 입증되어야 할 것이다.....
문명인이 단지 조악한 필수품과 안락을 얻기 위해 미개인보다
인생의 많은 부분을 일하느라 보내야 한다면, 어떻게 문명인이 미개인보다
더 좋은 주거지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집 안을 아름다운 물건으로 장식하기 전에 먼저 벽을 깨끗이 치우고
우리의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해야 한다.
문명인이란 보다 경험이 많고 현명한 미개인인 것이다.

젊은이들이 지금 당장 삶을 실제로 경험해 보는 것 이상으로 인생에 대해
확실하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 학생이 아담 스미스와
리카르도와 세이의 저술을 읽는 동안 그의 아버지는 갚을 길 없는
부채에 빠져 버리는 것이다.

나는 가장 빠른 여행은 바로 자기 발로 가는 것임을 익히 알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 대부분은 동서양의 기념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세운 자가 누구인지 궁금해한다.
그런데 나는 그 당시에 그런 기념물을 짓지 않은 사람,
그런 어리석음을 초월한 사람이 누구였는지를 알고 싶은 것이다.

한번은 어떤 숙녀께서 내게 현관에 깔 매트를 주겠다고 했으나
내게는 집안에 그런 것을 놓을 만한 자리도 없고,
집안에서든 밖에서든 그걸 털 짬도 없었기 때문에 사양한 적이 있다.
나는 문 앞에 있는 풀밭에다 발을 문지르는 것이 더 좋았던 것이다.
화근은 애초부터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내가 무엇보다 선호하는 일은 특히 내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고,
또 험하게 살더라도 나로서는 행복할 수 있으므로 지금 당장은
값비싼 양탄자나 좋은 가구, 맛있는 요리, 그리스 식이나 고딕 양식의 주택을
손에 넣기 위한 돈을 버는 데 내 시간을 써버릴 생각이 없었다.

나는 신념과 경험 두가지 모두에 의해, 소박하고 현명하게만 산다면
이승에서 한 사람이 먹고사는 일은 힘겨운 일이 아니라
유희와 다름 없는 일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변질된 선에서 솟는 것만큼 지독한 악취도 없다.... 내가 굶주릴 때
먹을 것을 주고 추위에 떨 때 따뜻하게 해주고, 또는 수렁에 빠졌을 때
나를 끌어내 준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내게 선을 베푼 사람이 아니다.
그 정도의 일은 뉴펀들랜드 종의 개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넓은 의미에서 볼 때 자선은 인간애가 아니다..... 악의 가지를 치는 사람이
천 명이라면 악의 근원을 꺾는 이는 한사람뿐이다.
가난한 자의 감독이 되려 하지 말고
이 세상에서 가치 있는 한 인간이 되도록 노력하자.

광할한 지평선을 마음놓고 누릴 인간만이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아침은 내가 깨어나는 시간이며 내 안에서 동이 트는 시간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육체노동을 할 만큼 잠에서 깨어있지만,
그중에 단 한사람만이 효과적인 지적 활동을 할 만큼 깨어 있는 것이며,
그보다 훨씬 많은 이들 중에서 한 사람만이 시적인 삶 또는 성스러운 삶에
종사하는 것이다. 깨어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껏 완전히
깨어 있는 사람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삶은 자잘한 일에 낭비되고 있다..... 단순하게, 단순하게, 단순하게 살지어다!
백 가지 천 가지가 아니라 두 가지나 세 가지로 일을 줄이라..... 하루 세끼 식사를
할 게아니라 필요할 때 한 끼만 먹도록 하라. 백가지 요리를 다섯 가지로 줄이라.....
자신이 놓은 덫에 걸리고 계산과 적당한 목표의 부족으로 사치와 부주의한 지출 때문에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개코원숭이처럼 사는 건지 아니면
사람답게 살고 있는 건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어째서 우리는 이렇게
쫓기듯이 삶을 영위해서 인생을 낭비하는 것일까? 우리는 허기가 지기도 전에
벌써 굶어죽을 각오를 하고 있다.

일단 문자를 배웠으면 언제까지나 인생에서 가장 낮은 맨 앞자리에 앉아 4학급이나 5학급의
한 음절로 된 말이나 되뇌고 있을 게 아니라 최고의 문학작품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콩코드 땅이 지금껏 배출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현명한 이들과 교제하고 싶다.
내가 플라톤의 명성을 듣고도 그의 책을 읽지 않을까? 마치 플라톤이 우리 마을 사람인데
나는 그 사람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는 듯이, 또는 바로 내 이웃에 살고 있는데 그의
지혜로운 말을 들어 보지도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실제는 어떤가?
불멸의 지혜가 담긴 그의 '대화록'이 바로 옆 선반에 꽂혀 있는데도 그 책을 읽지 않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상스럽고 비천한 삶을 영위하는 무식한 인간이다..... 우리는 고대의 훌륭한 사람들만큼
뛰어나야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이 얼마나 뛰어난가부터 알아야 할 것이다.

나는 홀로 있기를 좋아한다. 고독만큼 상대하기 좋은 친구를 보지 못했다.... 고독은 두 사람 사이의
거리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다..... 교제들은 대부분 지나칠 정도로 가치가 떨어져 있다. 우리가 상대방을
위해 뭐든 새로운 가치를 획득할 짬도 없이 금방 다시 만난다..... 지나치리만큼 근접해서 살고 있고
서로 걸리적거리고 상대방의 발에 걸려 넘어질 정도여서 그 결과 서로에 대한 존경심마저 잃고 있는 것 같다.
만나는 빈도를 줄이더라도 분명 중요하고 애정어린 의사소통을 하는 데 충분할 텐데도 말이다.....
나는 저토록 큰소리로 웃는 아비나 월든 호수 자체가 외롭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외롭지 않다....
하느님 역시 혼자이지만 악마는 혼자 있는 법이 없다.... 방앗간 옆 개울이나 풍향기, 북극성, 남풍,
4월의 소나기, 1월의 해빙, 새 집에 든 첫번째 거미가 그렇듯 나도 외롭지 않은 것이다.

말이란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서 있는 것이다. 하지만 소리를 질러서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섬세한 일들이 많다.

나는 고독이라는 거대한 바다 안으로 물러나 있었는데,
그 바다로 교제라는 강물이 흘러들었다.

사람이 살아있을 때는 언제나 죽을 위험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길을 잃어 보기 전에는, 다시 말해서 세상을 잃어버리기 전에는
자기 자신을 찾아내지도, 자신이 지금 서있는 위치와 자신이 맺고 있는 무한한 관계를
깨닫지도 못하는 것이다.

나는 차도 커피도 버터나 우유나 날고기도 쓰지 않기 때문에 그것들을 사기 위해
애써 일할 필요도 없으며, 애써 일하지 않으니 식품값이 거의 들지 않는다는 얘기도 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차와 커피와 버터와 우유와 쇠고기를 먹기 시작하면 그 값을 치르기 위해
많은 일을 해야 하고, 또 일을 많이 하면 그 사이에 소모된 영양을 보충하기 위해 잔뜩 먹어야 한다,
따라서 오십보 백보인 것 같아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 그것은 그가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는 데다
덤으로 생활까지 희생시켜야 하기 때문이라는 말도 했다.
나는 인류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육식을 버리게 될 운명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것은 미개인 부족이 보다 개화된 부족과의 접촉을 통해 서로 잡아먹는 일을
버리게 된 일만큼이나 확실하다.
거친 노동을 장시간 계속하는 것에 대한 가장 심각한 반대 이유는,
그런 노동을 하고 나면 거칠게 먹고 마실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음식의 참된 맛을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은 대식가가 될 수 없고,
맛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대식가가 될 수밖에 없다.....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인간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먹는 식욕이 인간을 더럽히는 것이다. 질이나 양이 아니라
감각적인 맛을 탐닉하는 것이 문제다.

우리는 몸 속에, 우리의 보다 높은 본성이 잠들수록 깨어나는 짐승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
그 짐승은 파충류 같고 관능적이며, 건강하게 살고 있는 우리의 몸 속에 들어 있는 기생충들이
그렇듯이 어쩌면 완전히 내쫓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 짐승으로부터 떨어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놈의 본성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놈은 나름대로 건강하며, 따라서 우리는
건강할 수는 있지만 순결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매일같이 내면의 짐승이 죽어가고 있으며
신성이 자리잡아 가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이다.

일이 이렇게 더디게 진행된다면 그만큼 더 오래 견딜 거라는 계산도 있었다.

이제는 손님 접대가 손님을 격리시키는 최상의 기술이 되었다.

1845년 12월 22일 밤에 월든 호수는 그 해 겨울 들어서 처음으로 완전히 얼었다.
인류의 대부분은 인디언들이 화약에 대해 무지한 것처럼 지혜에 대해 문외한이다.
폭설! 듣기만 해도 즐거운 말이 아닌가!
매운 추위가 내 한쪽 뺨을 때리면 비록 무종교자이긴 했지만
다른 쪽 뺨도 내 밀었다.

어디선 그랬듯이 그곳에서도 나는 종종 결코 오지 않을 손님을 기다리곤 했다.
내가 호수에서 관찰한 사실은 인간의 도덕 원리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그것은 평균의 법칙이다.... 한 인간의 깊이와 숨겨진 바닥을 알려면 그의 물가가
어느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고 인접한 시골이나 환경이 어쩐지 알기만 하면 될 것 같다.
만약 그가 저 아킬레스의 나라인 산악에 에워싸여 있다면, 그래서 그 봉우리들이
그늘을 드리우고 그것이 거의 가슴에 반영된다면, 그의 내면에도 그것과 상응하는
깊이가 있을 것이다.

숲속에 들어와 사는 데 한 가지 매력은
봄이 오는 것을 느긋하게 지켜볼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부드러운 설득력을 가진 해동이 쇠망치를 휘두르는 토르보다 힘이 더 세다.
해동은 녹이는 데 반해 토르는 산산조각을 낼 뿐이다.

단 한 차례의 이슬비에도 풀빛은 한층 더 짙어진다.
마찬가지로 보다 나은 생각을 집어넣을 경우 우리의 전망도 더 밝아진다.

그 매는 외로운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발 밑에 있는 지상 전부를 외롭게 만들었다.
우리는 야생이라는 강장제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무한대의 자연력, 광활하고 거대한 지형,
잔해가 깔린 해변, 살아있거나 썩어 가고 있는 나무로 가득한 황야, 뇌운, 3주 동안 계속 내려
홍수를 일으키는 장마를 보고 충전되어야만 한다.

자신의 극지방을 탐험하라..... 자신의 내면에 있는 완전한 신대륙과 신세계를 찾아다설
콜럼버스가 되어 무역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상을 위한 새 항로를 열라. 사람은 누구나
왕국의 군주이며, 그 앞에서는 러시아 황제의 제국도 한낱 소국, 얼음 위에 솟은 조그만
얼음덩이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자신을 존경할 줄 모르는 인간이 애국자가 되어 소를
위해 대를 희생시키는 일도 왕왕 벌어지고 있다.

모든 외국어를 말하고 모든 국가의 관습을 익히고 싶은 거라면,
다른 모든 여행자보다 더 멀리까지 여행하고 싶은 것이라면,
모든 풍토에 익숙해지고, 스핑크스로 하여금 돌에 머리를 찧게 만들고 싶다면,
차라리 옛 현인의 격언을 따라 '너 자신을 탐구하라.'
자신이 삶이 아무리 비천할지라도 그 삶을 정면으로 대하고 살도록 하라.
피하지도 욕하지도 말라. 그 삶은 당신만큼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이 가장 부유할 때 당신의 삶은 가장 가난해 보인다.
남의 흠이나 잡는 사람은 천국에서도 흠잡기에 바쁘리라.
설혹 그 삶이 가난할지라도 당신의 삶을 사랑하라.
설혹 구빈원이라도 유쾌하고 신나며 훌륭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석양의 햇살은 부자의 저택에서나 구빈원의 창문에서나 똑같이 눈부시게 빛난다.
남아도는 부로는 없어도 상관없는 것만 살 수 있다.
영혼의 필수품을 사는 데 돈은 필요 없다.
우리의 눈을 감기는 저 빛은 우리에게는 어둠일 뿐이다.
그날은 바로 우리가 잠에서 깨어나는 날 동터 올 것이다.
앞으로도 동틀 날은 얼마든지 있다. 태양이란 아침에 뜨는 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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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조] 2008/04/28 16:39 # 답글

    세계여행기 쓰실 때부터 종종 들르는 사람입니다. 소로우의 글을 보니 반갑네요. 더불어... 2년쯤 전에 미처 다 읽지 못한 채 남겨둔 <월든>이 생각나서 마음 한 구석이 꿈틀거립니다. <월덴 투>와 <먼 북소리>의 영향으로 찾아서 읽었는데, 아마도 덤벼드는 일상에 겁먹고 내려놓았겠지 싶네요. 다시 찾아봐야겠어요.
  • keaton 2008/05/03 15:09 #

    안녕하세요, 조님 ^^ 모든게 넘쳐나는 시대에, 삶의 절제를 말하는 월든은 여전히 힘이 있네요.
    이번 연휴 때 기회되시면 한 번 도전해보세요. 후회안하실거에요~
  • born2fly 2008/05/07 17:27 # 답글

    가져갑니다.
    저야말로 한 번 도전해 봐야겠네요 ^^
  • keaton 2008/05/07 20:24 #

    곧 숲속에서 뵐 수 있겠네요.
    놀러오세요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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